도쿄 자동차 문화는 한곳에 모여 있지 않습니다. 도시 전체에, 그리고 지바와 요코하마까지 흩어져 있어요. 기계식 주차 리프트 안에, 쇼룸 유리창 너머에, 개인 개러지와 뒷골목에 숨어 있어서 걸어 다니다 보면 하나씩 마주치게 됩니다. 이 열한 장은 며칠 동안 그렇게 걸어 다닌 기록입니다.
RWB 신년 크루즈, 후지산 노을
맨 위 사진부터 볼까요. 스크롤을 멈추게 만드는 그 사진입니다. 큼직한 윙을 단 청록색 RWB 997, 머리 위엔 야시오미나미 출구 표지판, 그리고 주황빛 하늘 한가운데 정확히 자리 잡은 후지산. 2024년 RWB 신년 크루즈였고, 저희도 그 안에 끼어 달렸습니다. 해가 지는 고속도로 위를 나카이 아키라(Akira Nakai)의 와이드 바디 Porsche들이 함께 달리는 장면이었죠. 도쿄 고속도로의 노을은 운이 좋으면 산이 따라오는데, 그날 저녁이 바로 그 운 좋은 날이었습니다.
BINGO Sports 쇼윈도의 두 전설
Lexus LFA와 Toyota 2000GT가 BINGO Sports 도쿄 쇼룸(BINGO SPORTS 東京ショールーム) 유리 너머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메이지 진구 가이엔에서 멀지 않은 도쿄 도심이에요. BINGO는 BH Auction도 운영하는 다케이 신지(Shinji Takei)가 나고야에서 세운 회사로,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컬렉터카 딜러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쇼윈도는 수시로 바뀌는데, 이날 밤엔 40년의 시차를 둔 일본 스포츠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대가 거리 풍경을 유리에 비추며 서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던 쇼윈도에 역사가 들어 있는 거죠.
밤의 아오야마
국도 246호선, 아오야마도리 보행자 육교 아래 Audi R8 한 대가 도시 불빛에 파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일본차는 아니지만 아주 도쿄다운 장면이에요. 이 동네에선 슈퍼카가 거의 가구 같은 존재이고, 나머지는 조명이 다 해 줍니다.
지바 RWB 본사, 나카이 상의 작업장
첫 번째 사진 속 차들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나카이 아키라의 작업장, 지바의 RAUH-Welt Begriff 본사 안에 RWB Porsche 911 한 대가 네온 아래 공구와 파츠 사이에 서 있습니다. 모든 RWB는 나카이 상이 직접 자르고 맞춥니다. 앞유리에 붙는 "Rough World" 배너는 이 브랜드의 영어 이름을 전 세계로 실어 나르고요. 모든 게 시작되는 그 방에 서 있는 기분은 거리에서 차를 볼 때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초록색
차에 칠해진 것 중 가장 밝은 초록일지도 모르는 Mazda RX-7(FD3S)입니다. 너무 밝아서 옆에 서 있으면 얼굴에 초록빛이 반사될 정도예요. 팝업 헤드라이트, 벤트 보닛, 카본 립. 이 도장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데, 아직은 저희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로 기사 하나로 아껴 두겠습니다.
기계식 주차 리프트에서 사는 차들
도쿄의 마니아 차들은 실제로 많이들 이렇게 삽니다. 차보다 겨우 조금 넓은 리프트 칸에 들어간 카본 보닛 S2000. 리프트 위층엔 노란 Leaf가 서 있고, 아래 칸엔 훨씬 흥미로운 무언가가 철창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공간이 차를 갖는 데 드는 가장 비싼 비용이고, 사람들은 조용한 천재성으로 그걸 해결합니다. 아파트 주차장 자리 싸움에 익숙한 한국 오너라면 남 일 같지 않을 거예요.
뒷골목
검은 Lexus LS가 좁은 뒷골목으로 코를 내밀고 있고, 위에는 고도칸 주차장 표지판이 보입니다. 도쿄의 일상적인 고급차가, 모든 차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만드는 그런 골목에 있는 장면이죠.
미조타 상의 Z32: 요코하마 개러지에서 나온 328 km/h
이 사진은 캡션 한 줄로는 부족합니다. 보닛을 연 은색 300ZX는 튜닝숍 Revolfe S.A.를 이끄는 미조타 이사오(Isao Mizota)의 요코하마 개러지에 사는 차이고, 일본에서 가장 전설적인 Z32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조타 상은 Z32가 출시되고 몇 달 뒤인 1990년 3월에 이 차를 Nissan에서 신차로 샀고, 그 뒤로 지금까지 같은 차를 계속 개발해 왔습니다. 섀시 하나로 30년이 넘었어요. 그가 R32 GT-R 대신 300ZX를 고른 이유를 들으면 이 차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Z32의 공기저항계수는 약 0.30, GT-R은 0.40. 초고속에서는 공기가 적이거든요. 이 차의 최고속도 기록은 328 km/h입니다.
엔진은 지금도 VG30DETT, 순정 상태에서 약 280 PS를 내던 3.0리터 트윈터보 V6입니다. 지금은 부스트 1.7 kg에서 약 680마력을 냅니다(그렇습니다, kg 단위 부스트는 러시아식이기도 하죠). Garrett GT25/GT28 하이브리드 터보, JUN 캠샤프트와 커넥팅 로드, Cosworth 피스톤, 포트 연마 헤드, 850cc 인젝터, HKS F-Con V Pro ECU, ARC 냉각 계통, ATS 카본 트리플 플레이트 클러치. 섀시는 스폿 증설과 롤케이지, HICAS 4륜 조향은 제거했고, 브레이크는 앞 Brembo F50, 뒤 F360 캘리퍼입니다. BILSTEIN 차고조절식 서스는 20년도 더 전에 단 그 세트 그대로예요. 서킷에선 고다운포스 윙을 달고, 고속 도로 주행 때는 윙을 떼고 감쇠력을 부드럽게 바꿉니다.
그리고 Z32 팬이라면 다 아는 또 하나의 이야기. 이 차에는 Mid Night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9년 해산할 때까지 도쿄와 요코하마 사이 완간 고속도로를 달린 전설의 Mid Night Club의 엠블럼이죠. 회원이 되려면 250 km/h를 훌쩍 넘길 수 있는 차, 1년 이상의 견습 기간이 필요했고,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통과했다고 합니다. 미조타 상에게 클럽 얘기를 꺼내면, 저희를 포함해 모든 사람의 증언대로 그는 웃으며 화제를 돌립니다.
Z32라는 차 자체도 주목받을 만합니다. Cray 슈퍼컴퓨터의 도움으로 설계됐고, CAD로 개발된 최초의 양산차 중 하나입니다. Super HICAS 4륜 조향을 도입했고, 일본의 280 PS 자율규제 아래 출시된 첫 차였습니다. Car and Driver는 7년 연속 이 차를 Ten Best에 올렸습니다. 사인이 들어간 엔진룸까지 갖춘 이 차 옆에 서 보면 오너들이 왜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하는지 알게 됩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턴테이블 위의 미래
긴자 Nissan Crossing에서 도어를 활짝 연 Nissan Hyper Force 콘셉트. Nissan이 그리는 전기 고성능 슈퍼카이고, 1990년부터 달려 온 Z32와 묘하게 날카로운 짝을 이룹니다. 실물은 어떤 사진보다 날이 서 있습니다.
에비스의 야경으로 마무리
마지막 사진은 에비스역 옆, 옛 에비스 맥주 양조장 자리에 지어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도시입니다. 타워 꼭대기 층 Sky Lounge는 무료이고, 맑은 저녁이면 이런 풍경을 보여 줍니다. 하나둘 켜지는 불빛, 그리고 지평선에 다시 나타난 후지산. 첫 사진의 그 산이 이야기의 끝을 닫아 줍니다. (여기는 도쿄의 에비스입니다. 또 하나의 에비스, 후쿠시마의 드리프트 서킷은 따로 기사가 있습니다.) 도쿄 카 컬처는 저 불빛 곳곳에 있습니다. 직접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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